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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시진핑 리커창 총리 나이 사망 원인 이유 프로필 고향 학력
    카테고리 없음 2023. 10. 27. 11:33

    

    출생 나이 생일
    1955년 7월 1일

    고향 출생지
    안후이성 허페이시
    사망
    2023년 10월 27일

    학력 대학교
    베이징대학 (법학 / 학사)
    베이징대학 대학원 (경제학 / 석사)
    베이징대학 대학원 (경제학 / 박사)

    최종 당적
    중국공산당

    주요 경력
    제17, 18대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랴오닝성당위원회 서기
    허난성당위원회 서기
    허난성 성장
    중국공산주의청년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총리

    부인 아내 와이프 가족관계 자녀
    미공개

    2023년 10월 27일 돌연 사망 소식이 전해진 리커창(李克强) 전 중국 국무원 총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거의 유일한 정치적 대항마였다.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을 배출한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의 리더였지만 시진핑이 집권 후 공청단까지 사실상 장악하면서 정치적으로 힘을 받지는 못했답니다.


    중국 관영 CCTV는 리커창이 이날 새벽 0시 10분께 상하이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온라인 플랫폼 X(트위터)에는 그가 물에 빠져 숨졌고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회생하지 못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도 전해졌다.

    

    리커창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집권 1~2기 총리를 지내며 중국 경제를 이끈 명실상부한 중국 공산당의 2인자였답니다.

    리커창은 안후이성에서 태어났지만 부친을 따라 허베이성에서 자랐다. 1974년 문화대혁명 기간에 고교를 졸업하고 당대 지식인 계층의 관행대로 농촌에서 복무했다. 문화대혁명이 종료된 후 북경대(베이징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문화대혁명으로 입시가 중단됐다가 재개된 1977년 바늘구멍 같은 시험을 뚫고 북경대에 입학한 거다. 리커창을 비롯한 77학번 세대가 중국을 이끌어갈 차세대 리더로 주목받은 배경이랍니다.

    리커창은 알려진 대로 공청단 파벌의 선두주자다. 대학 재학시절 북경대 총학생회장을 맡았고 1982년엔 학생 신분으로 공청단 서기를 지낸다. 이때 이미 당 고위간부들이 참여하는 공청단 행사를 주관하는 등 두각을 나타내며 공청단의 미래로 자리잡았다. 공청단 대선배인 후진타오가 리커창을 남달리 주목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절이다. 후진타오는 이후 리커창의 가장 큰 정치적 후원자가 된다.

    리커창은 1998년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에 입성하고 1999년엔 허난성 성장을 지낸다. 당시 44세로 역대 최연소 성장이었다. 랴오닝성 성장을 거치며 국가주석의 유력 후보로 여겨졌으나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약했던 시진핑이 2007년 상하이 당서기로 발탁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공청단을 극도로 견제했던 상하이방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리커창을 막아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결국 시진핑이 2010년 중앙군사위 부주석으로 지명되면서 리커창과 시진핑의 권력다툼은 종결됐다. 시진핑 우위의 서열이 계속해서 이어지다가 시진핑이 국가주석이 됐고 리커창은 2013년 공산당 서열 2위 국무원 총리에 오르며 대안세력에 만족해야 했다.

    리커창은 시진핑 치세하에서 여러차례 쓴소리를 하며 존재감을 내비쳤으나 사실상 국가주석을 견제했던 이전 총리들에 비하면 영향력은 크지 않았다. 관료 스타일의 리커창이 시진핑의 카리스마에 눌려 자신의 색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해석과 함께 공청단 파벌의 세가 워낙 약해 리커창의 정책에 힘을 실어주지 못했다는 해석이 함께 나온답니다.

    

    리커창은 작년 신년 연설에서 본인의 임기가 올해 끝난다고 직접 밝혔고 당대회에서 중앙위원 명단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하야를 공식화했다. 그럼에도 당내 서열 2위로 비중있는 다른 자리를 맡을 수 있다는 해석이 지속적으로 제기됐지만 돌연 사망하며 파란만장한 정치사도 마감됐답니다.

    리커창 등장에… 반긴 中국민, 외면한 中매체
    - 2023. 9. 5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집권 1·2기(2013∼2023년) 동안 총리로서 중국 경제를 이끌었던 리커창(李克强) 전 총리가 퇴임 후 5개월여 만에 첫 공개 행보에 나섰다. 리 전 총리의 등장에 중국 국민들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환영했지만 중국 매체들은 이 소식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4일 대만 중앙통신사 등은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리 전 총리가 간쑤성 둔황 모가오(莫高·막고)굴을 방문한 영상과 사진이 올라왔다고 보도했다. 이 영상에는 리 전 총리가 모가오굴에서 밝게 웃는 모습으로 관광객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이 담겼다. 리 전 총리를 본 관광객들은 “총리님, 안녕하세요”라고 외치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고, 휴대전화로 촬영하기도 했다. 리 전 총리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3월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퇴임한 이후 5개월여 만이랍니다.

    리 전 총리는 시 주석의 1인 체제가 공고화된 이후에도 민생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 국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특히 2020년 5월 “중국인 6억 명의 월수입이 1000위안(약 18만 원)에 불과하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점상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주목받기도 했다. 당시 시 주석은 절대빈곤을 없앴고,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를 건설했다는 것을 성과로 강조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리 전 총리의 발언이 시 주석의 성과를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돼 갈등설이 불거지기도 했답니다.

    당시 리 전 총리의 노점상 활성화 제안은 수용되지 못했다. 하지만 6월 중국의 청년 실업률이 21.3%까지 치솟으며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자 상하이와 선전 등 대도시들은 최근 노점상을 장려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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