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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후궁 의빈 성씨 묘 죽음,이산 성덕임 아들 자녀 명 실존인물카테고리 없음 2022. 1. 2. 01:49
MBC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이 화제랍니다. 조선 22대 왕 이산(정조)과 궁녀 성덕임(의빈성씨)과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정말로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기 때문인데, 실제 '조선왕조실록' 등 기록에서도 두 사람의 사랑은 드라마 이상의 모습으로 끊임없이 표현됐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어렵게 얻은 아들 문효세자는 태어난 지 다섯 해도 되지 않은 1786년 6월 홍역으로 사망한답니다. 의빈성씨 덕임 역시 아들을 떠나보낸 지 반 년도 안 된 1786년 11월 생을 달리했답니다.
정조는 "슬프다"와 아울러서, "사랑한다"라는 말을 담아 의빈성씨의 묘지명과 제문을 직접 작성했답니다.
정조는 아들과 아울러서, 부인의 안식처를 궁에서 멀지 않은 곳에 두고 싶어했답니다. 정조가 아들 문효세자를 떠나보낸 뒤 직접 지관(풍수전문가)들과 함께 도성 주변의 길지를 찾아 다닌 이유랍니다.
도성과 한강 사이에 위치한 소나무 숲이 우거진 양지바른 언덕(지금의 효창공원)을 발견한 정조는 이곳을 아들의 묘로 정하고 장사를 지낸 뒤 '효성스럽고 번성하다'라는 뜻의 '효창묘'로 명명했답니다.
반년 뒤에 정말로 의빈성씨 덕임이 사망하자 세자 묘 아래쪽 언덕에 그의 묘도 마련했답니다. 1870년 고종은 도성에서 가장 가까운 왕실 묘역인 효창묘를 효창원으로 격상했답니다. 효창원은 지금의 만리동과 청파동, 남영동, 공덕동, 도원동, 용문동에 이르기까지 무려 100만 평에 이르는 숲으로 이뤄진 큰 규모를 자랑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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