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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 임기 재산 푸틴 나이 지지율카테고리 없음 2025. 3. 1. 09:57
종전협상 시작도 안했는데…젤렌스키 벌써부터 차기 대권 암투?
-2025. 2. 18
종전협상이 가시화하면서 차기 대권을 둘러싼 우크라이나 정계의 암투가 격화하고 있다. 이번 궁정 암투극의 주연들은 러시아에 맞서 전쟁을 이끌고 있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군 장성들이랍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키이우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국가수사국은 지난달말 장성과 영관급 간부 등 군 고위 간부 3명을 전격 체포했다. 아르투르 호르벤코 중장, 유리 할루슈킨 준장, 일리아 라핀 대령이다. 국가수사국은 이들에게 지난해 5월10일 우크라이나 동북부의 하르키우 주(州)에 대한 러시아군의 대대적 공세를 막아내지 못했다는 혐의를 적용했다.
국가수사국은 호르벤코 중장에 대해선 부대배치와 병력의 장비 구비, 화력지원과 통신 등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을 물었고, 할루슈킨 준장에겐 호르벤코 중장이 이끄는 부대에 대한 화력 및 공군 지원을 소홀히 했다는 책임을 물었다. 라핀 대령에 대해선 방어진지 구축 실패와 휘하 부대원들의 탈영을 문제삼았다.
국가수사국은 “이들의 복무태만으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영토를 점령했다”며 “인력과 무기손실도 이들의 탓”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체포된 군 고위간부들은 반발했다. 할루슈킨 준장은 러시아군의 접근을 참모본부에 보고하고 지원을 요청했으나 “현재 인원으로 대응하라”는 지시만 받았다고 한다. 할루슈킨은 500만 흐리우냐(미화 11만8000달러, 한화 1억7000만원)의 보석금을 내고 석방됐으나, 국가수사국은 몇 시간만에 “새로운 혐의를 발견했다”며 할루슈킨을 다시 체포했다. 할루슈킨의 변호인은 “전혀 새로운 혐의가 없고, 기존 수사자료를 그대로 복사했을 뿐”이라며 비판했다.
키이우인디펜던트는 ‘장군들의 사건’으로 알려진 이번 수사에 대해 “올해 전쟁이 끝나면 치러질 수 있는 대선을 앞두고 군 지도부의 인기를 떨어뜨리려는 무리한 시도”라고 분석했다. 2019년 5월 취임한 젤렌스키는 임기 5년의 대통령직을 지난해 5월 종료한 상태다. 그러나 계엄령 아래서는 선거를 금지하는 우크라이나 헌법을 이유로 계속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있다. 헌법상 연임을 허용하고 있어 젤렌스키는 종전 후 대선 출마가 가능하답니다.
우크라이나 정치학자 예브헨 마흐다는 일련의 수사와 관련해 키이우인디펜던트에 “다가올 권력투쟁에 대비해 정치권력이 군을 길들이려는 것”이라고 했다.
명망높은 군 장성을 젤렌스키가 견제한다는 의혹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2년 개전 초 러시아의 공세를 성공적으로 방어한 발레리 잘루즈니 총사령관에 대한 국민들의 신망이 올라가자, 지난해 전격 해임한 뒤 영국 대사로 발령을 냈다.
세르히 나이에프 중장은 지난 2월 우크라이나의 한 신문과 인터뷰에서 “러시아조차도 장군들의 (작전) 실패에 대해선 기소하지 않는다”며 젤렌스키에 직격탄을 날렸지만, 신문이 발행된 다음날 바로 동부 최전선의 작은 부대로 좌천됐다고 한답니다.
푸틴 집권 25년…옐친 후계자서 글로벌 스트롱맨으로
-2025. 1. 29
1999년 12월 31일 러시아의 초대 대통령인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사임을 발표했다. 후임은 불과 4개월 전 총리로 지명된 블라디미르 푸틴이었다. 옐친의 사임 때만 해도 베일에 싸인 인물이었던 푸틴은 야당으로부터 ‘옐친의 꼭두각시’라는 조롱을 받아왔다. 하지만 25년이 지난 지금도 푸틴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에도 리더십이 흔들리지 않고 있다. 31년 간 집권한 이오시프 스탈린 전 소련 서기장의 기록도 넘볼 기세다.
옐친 대통령은 사임 당시 대선을 6개월 앞두고 극도의 레임덕에 빠진 상태였다. 1996년 대선에서 결선투표까지 간 끝에 겨우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옐친이 3선에 도전할 경우, 공산당 등 야권으로 정권이 넘어가는 것은 확실시됐다. BBC는 “광범위한 부패와 거대한 정치적, 사회적 문제 속에서 옐친의 인기는 추락했고 차기도 예측이 어려워졌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1999년 8월 푸틴을 총리로 임명하며 사실상 후계자로 지명했다. 그 순간까지 푸틴은 KGB 경력이 눈에 띄는, 중앙 정계엔 잘 알려지지 않은 정치인이었다. 옐친 2기 정부에서 연방보안국(FSB) 국장 등을 지내긴 했지만 총리 급으로 거론되진 않았다. 옐친은 푸틴 임명 때부터 후계자로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리아노보스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옐친으로부터 대통령 출마 권유를 받았지만 거절했었다”고 밝힌 바 있다.
푸틴은 총리가 된 뒤 당시 러시아 곳곳에서 테러를 벌이고 있던 체첸 공화국에 대한 강경 대응으로 인기를 얻었다. 당시 인기가 바닥 수준이던 옐친과 달리 70%를 넘나드는 지지율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푸틴은 옐친이 사임하며 2000년 3월로 앞당겨진 대선에 출마하며 이때의 이미지를 적극 활용했다. 그는 ‘강한 러시아로 돌려놓겠다’고 약속했다. 공산당 등 야당은 ‘옐친의 꼭두각시’라고 비난했다. 푸틴은 야당의 공세에도 1차 투표에서 과반 이상의 득표율을 거두며 47세의 나이로 러시아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푸틴 시기 러시아는 위상을 다시 높이기 시작했다. 푸틴은 옐친 시대와 달리 내각 곳곳에 전문가들을 배치했다. 대표적인 인사가 알렉세이 쿠드린 재무부 장관, 게르만 그레프 경제개발무역부 장관 등이다. 석유값 폭등 등을 활용해 제조업 역량을 강화하며 금융위기로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황까지 몰렸던 러시아 경제를 빠르게 복구했다. 미하일 호도르콥스키 등 올리가르히들이 숙청됐다. 2차 체첸 전쟁에서도 완벽하게 승리하며 국제적 입지도 높아졌다. 이를 바탕으로 푸틴은 2004년 대선에서는 70%가 넘는 압도적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답니다.
서방에서도 푸틴에 대해 호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다. 취임 초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푸틴에 대해 “그 남자의 눈을 봤고 영혼을 느낄 수 있었다”며 호의적으로 표현했다. 2003년 영국에서도 왕실의 특별 대우를 받았다. 러시아 반체제 언론인 블라디미르 카라 무르자는 캐나다 CBC방송에 “푸틴 정부가 러시아의 마지막 독립 방송의 플러그를 끊은 바로 그 주에 그는 런던으로의 호화로운 국빈 방문과 영국 여왕과의 차량 탑승을 대접받았다”며 “처음부터 (푸틴이 정치적 반대자를 탄압한다는 것은) 분명했지만 서방은 눈을 감았다”고 말했다.
유로마이단 이후 서방과 갈등 고조…2036년까지 집권 가능
푸틴은 2008년 헌법의 3선 금지 조항에 걸리자 대선엔 출마하지 않았다. 하지만 푸틴 정부에서 총리였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대선 후보로 세우고 본인은 총리에 앉았다. 총리로 물러났지만 대통령 취임식에서 푸틴이 먼저 연설하는 등 러시아의 권력자가 누구인진 명확했습니다.
2012년 푸틴은 3선에 출마하고 대통령직에 복귀했다. 메드베데프는 총리로 돌아갔다. 그는 이때부터 서방에 대해 더 강경한 모습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프랑수아 올랑드는 CBC에 “푸틴은 국가원수들 간 회동에서 매우 드문 행동을 했다. 종이 한 장은 달라고 요청하더니 유럽 지도를 그리고 러시아의 안보를 위협하는 유럽 중부에 배치된 미사일을 그렸다”며 “이미 그때부터 푸틴은 피해자 역할을 하고 싶어했다”고 지적했다.
2013년 우크라이나에서 유로마이단 혁명으로 친러 성향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실각한 것은 푸틴에게 결정적 타격이었다. 언론 매체 폴리티코의 조야 셰프탈로비치는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일부로 봤다”며 “유로마이단에 의해 친러 측근이 권좌에서 물러난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혁명의 성공을 자축하는 동안 푸틴은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동부 지역 분리주의자를 지원하는 식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비공식적 공격을 시작했다. 피터 맥케이 전 캐나다 외무부 장관에 따르면 스티븐 하퍼 전 캐나다 총리는 “G20에서 만난 푸틴에게 크림반도에서 나가라”고 요구했지만 푸틴은 “우리는 크림반도에 없다”고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후 푸틴과 서방 간의 갈등은 고조됐다. 2014년 러시아는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서 퇴출됐다. 현재 이는 G7 정상회의로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일본만 참여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등의 중재로 2014년 민스크 협정을 체결했지만 푸틴은 결국 2022년 3월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적 침공을 감행했다. 하지만 전쟁에서 러시아는 예상과 달리 고전했다. 러시아군 수십만명이 전쟁에서 죽었고 동부 전선에서 양측 간 교착 상태만 이어지고 있다. 미국, 유럽연합(EU) 등은 러시아에 광범위한 제재를 가했고 러시아산 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내부에서도 쿠데타 등 푸틴의 통제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관측이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푸틴은 아직까지 흔들리지 않고 있다. 2020년 헌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 임기를 6년으로 늘리고 2036년까지 집권할 길을 열었다. 지난해 러시아 대선에서도 87% 넘는 표를 얻으며 압승했다. 러시아인들도 2011년 총선 부정선거 논란 때와 달리 크게 반발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BBC는 “푸틴은 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 이후로 크렘린의 어떤 지도자보다 더 오랫동안 집권해 왔다”며 “그의 통치에 대한 모든 반대는 사라졌고 그가 원한다면 2036년까지 머물 수 있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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