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안희정 가족관계 자녀 아들 부모 나이 부인 아내 민주원 프로필
    카테고리 없음 2022. 8. 4. 15:17

    

    1) 안희정과 부인 아내 와이프인 민주원의 이혼

    지난 2022년 4월 보도에 따르게 되면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아내 민주원 씨와 지난 9월 옥중 이혼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답니다. 고려대학교 83학번 운동권 동기로 만나 결혼한 지 33년 만이랍니다.


    당시에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안 전 지사와 민 씨는 지난해 9월 협의 이혼했답니다. 슬하에 두 아들이 있지만, 모두 어른인 관계로 친권 및 양육권 분쟁은 무의미한 것으로 알려졌답니다.

    이들의 이혼설은 지난 연말부터 정치권에서 계속해서 흘러나왔답니다. 그러나 지난 3월 안 전 지사의 부친상에 민 씨가 참석하면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무마됐으나 결국 파경을 맞았답니다.

    두 사람은 6년의 연애 끝에 1989년 결혼했답니다. 안 전 지사는 지난 2017년 대선에서 민 씨에 대해 "내 첫사랑이며 동지적 정말로 유대감을 지닌 30여 년 지기"라고 표현했답니다.


    안 전 지사는 지난 2019년 9월 대법원에서 수행비서를 위력에 의해 성*행한 혐의로 징역 3년 6개월을 확정받고 수감 중이랍니다.

    한편 민 씨는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 김지은 씨를 향해 "처음 본 날부터 안희정 씨를 무척 좋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좋아하는 남자의 마누라에 대한 질투가 과하다고 생각해 안희정 씨에게도 조심하라고 조언했던 것 같다"고 주장했답니다.

    

    이어 "우연히 만난 비서실장님으로부터 김지은 씨가 정무직으로 가는 것 때문에 도청 사무실에서도 울었다. 그리고, 밥 먹다 울고, * 마시다 울고 해서 다독여주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아무 장소에서나 누가 있든지 말든지 운다고 해서 기가 막혔던 마음이다"고 진술했답니다.


    그러면서 "지사님 보면 힘 나고 웃었던 것인데 지금은 눈물이 난다"는 김 씨의 메시지를 공개하며 "두 사람은 연애한 것"이라고 주장했답니다. 그는 "치욕스러운 상황에서도 지켜야 할 자식들이 있기 때문에 정말로 손가락에 멍이 들도록 손을 움켜잡고 법정 증언을 했다"고 본인이 겪은 심적 고통을 드러낸 바 있답니다.

    2) 안희정 프로필 누구
    나이 출생은 1964년 12월 1일이며, 고향 출생지는 충청남도 논산군입니다. 본관은 순흥 안씨라고 하며, 부모 아버지는 안동근, 어머니 국중례랍니다. 형제자매 가족관계로는 형인 안희돈, 누나 안향미가 있습니다.

    배우자 이름은 민주원(1989년 결혼 ~ 2021년 이혼)이며, 자녀로는 장남 안정균과, 차남 안형균이 있습니다.

     

    학력을 살펴보면 구자곡공립국민학교 (졸업 / 45회)과 아울러서, 연무중학교 (졸업 / 18회), 남대전고등학교, 성남고등학교 (중퇴)랍니다. 아울러,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 (합격)한 뒤에,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철학 / 학사)를 졸업했습니다. 병역 군대는 면제 (수형)라고 하며, 종교는 무종교라고 하네ㅛㅇ

    

    3) 안희정 경력 이력
    지난 1989년 경에 YS의 통일민주당에서 보좌관으로 정계 입문한 이후 노무현 전 의원의 최측근이 된 뒤에 '노무현의 왼팔'과 아울러서, '노무현의 좌희정 & 우광재' 심지어 '노무현의 정치적 동업자'라고까지 불리우면서, 정치인 노무현의 행보 및 정책적 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답니다.

    자타가 공인하고 있는는 참여정부 성립 일등 공신이었지만, 2002년 대선 직후 선거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받게 되어 참여정부에서 요직을 맡지 못했답니다. 그렇지만 노 전 대통령을 대신해서 감옥을 갔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여전히 친노에서 영향력은 여전했답니다.

     

    이후에도 정치적 자립을 시도하여 2010년 고향에서 충청남도지사에 당선되었답니다. 이후 연임에 성공하며 안정적인 도정 활동을 바탕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부각되었으며, 지지율 선두권을 달리고 있었답니다.


    4)  친노의 후계자!!
    일명 친노 중에서도 가히 지존은 물론이거니와, 최고존엄의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인물이랍니다. 노무현이 본인 다음으로 가장 신뢰했던 인물이라고 하며, '노무현의 왼팔'과 더불어서, 그리고 이광재와 더불어 '좌희정-우광재'라 불리었던 것인데,

    

    당연히 우의정보다 좌의정이 높은 것처럼 진자로 노무현에게 있어서 오른팔로 불렸던 이광재보다도 확실히 한 단계를 더 뛰어넘는 긴밀한 관계, 최측근 중에서도 노무현 바로 옆에 있었던 심복이 안희정이었답니다.

    안희정은 '노무현의 진정한 정치적 동업자'로 불렸을 정도로 노무현과의 관계가 가까웠답니다. 이것은 단지 언론에서 붙인 별명이 아니라 노무현 본인이 현직 대통령 시절을 안희정을 자신과 동업자이면서도, 동지였다라고 발언했을 정도였답니다.

     

    노무현이 계속해서 낙선하던 시절 정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정말로 각종 사업을 시작했을 당시 모든 실무와 자금을 담당해 온 것은 안희정이었으며, 지난 1993년 8월 설립했던 지방자치실무연구소의 실무를 담당하던 것도 안희정이었기 때문에, 정말로 노무현의 안희정에 대한 신뢰는 다른 친노 인사들에 비해 유달리 남달랐을 사연이 있었답니다.

    위와 같은 사연으로 인해서 안희정 또한 노무현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여기 계시는 노무현과 정말로 저는 진정하게도 정치적 동업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할 정도였답니다.

     

    안희정은 이광재와 함께 노무현이 꼬마스러웠던 민주당에서 거의 정치 세력 없이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부터 진짜로 노무현에게 인생을 걸고 같이 했던 몇 안되는 정치적 동반자, 동지였습니다. 그리고, 따라서 친노 성골 중 차기 왕위계승권 서열 1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답니다.

    

    5) 충청남도지사 시절
    대통령의 측근과 더불어서, 징역살이로 그럴듯한 정치적 커리어도 없고 친노진영도 몰락하게 되면서 안희정도 정치 생명을 연장하기 글렀다는 평가가 많았답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에 사분오열 되는 와중에도 항상 민주당을 지켰으며 노무현의 비극적인 최후로 뭉쳐진 추모 여론, 정권 교체 이후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 하락과 아울러서, 참여 정부에 대한 재평가 등의 반사효과가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노무현에 대한 진실한 마음을 보이면서 다소 보수색이 강하기로 알려져 있는 충청남도의 도정을 맡기에 이른답니다. 이로써 이렇다 할 정치적 커리어 없던 안희정은 광역자치단체의 행정가로 화려하게 거듭났습니다.

    한편, 이명박이 이때의 선거 패배 때 왜 여권에는 이광재, 안희정 같은 사람이 없냐며 아쉬워했을 정도로 정말로 친노인사치고 보수진영 인사들에게도 호평받는 편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친노진영으로 분류되는 정치인 중엔 그나마 온건파적 성향인 것도 한 몫한답니다.

     

    이렇게 중도적인 성향을 통해 진보나 보수언론을 가리지 않고 광폭 행보를 보이며 중도층에게도 큰 호감을 얻었던 것이며, 지난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의 충남지사 재선을 계기로 더이상 '친노'라는 수식이 없는 것임에도, 자기 능력을 바탕으로 정치 세력화를 얼마든지 추구할 수 있음을 입증해보였답니다. 일부 정말로 민주당 강경 지지자들의 경우에는 이러한 온건파적인 면모 때문에 약간의 비토 정서를 보이고 하지만 적어도 그 능력은 탁월하다고 인정할 정도랍니다.

    참고로, 중도적이고 새로운 정치를 강조하는 인물인 만큼 안철수와 간혹 비교되기도 하는 것인데 약간 중도보수에 가까운 안철수와 달리 자신은 스스로 '진보' 정치인이라며 정말로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있어 중도에서도 진보에 가깝답니다.

     

    아울러 자신은 김대중-노무현을 잇는 장자가 되고 싶다고 말할 정도랍니다. 물론 이뤄지지는 않았습니다. 안희정이 말하는 새정치는 새로운 진보와 보수의 틀을 만들자는거지 안철수처럼 그 제3지대를 구축하겠다는게 아니라며 선을 긋고 있답니다.

    출중한 행정 능력과 더불어서, 대한민국 정치계의 메인 스트림으로 부활한 친노의 적통이고, 여야 동년배 정치인에 비해 돋보이는 수려한 외모를 가지고 있답니다.

     

    준수한 화술과 아울러서 논리력, 인생역정은 연설이나 토론, 방송, 유세 등에서 대중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플러스적 요소를 갖추고 있는 것이지만, 19대 대선에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날리기 전에는 대중적 인지도를 갖추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 본인의 말처럼 '지방 사또' 정도의 정치인으로 남아있었답니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다 할 수는 없었음에도 전국적으로 상당히 주목받던 차세대 정치인임은 사실인 것이며, 충청 대망론의 대표주자로 미는 분위기도 있었답니다. 실제로 충남지역에서는 행정가로서 보여준 탁월한 행정능력과 사람을 가리지 않는 인품에 대해 세대를 막론하고 안희정을 대단히 높게 평가하는 여론이 조성되어 있었던 바가 있답니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