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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조 부인 아내 최정화 결혼 사건 나이 목사 사망 북악산 루트카테고리 없음 2025. 4. 10. 13:14
‘청와대 습격사건’ 1·21사태 북한 무장공비 출신 김신조 목사 소천
-2025. 4. 9.
북한 무장공비로 우리나라에 침투했다가 귀순한 뒤 목회생활을 했던 김신조 목사가 9일 83세로 별세했다.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서울성락교회 등에 따르면 김 목사는 이날 새벽 소천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빈소는 서울 영등포구 교원예움 서서울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김 목사는 간첩 출신 첫 강연자로 ‘반공 강연의 1인자’ 소리까지 들었다.
김 목사는 2020년 문화일보와 인터뷰에서 1·21사태를 김일성이 일으켰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1·21사태 배경과 관련 "당시 김일성은 항일투쟁 동지 김책의 아들 김정태에게 특수부대 창설을 지시했다"며 "김일성은 전선 없는 전쟁 수행 계획을 수립, 육상·해상·공중으로 특수부대를 일거에 침투시켜 한 달 이내에 남조선을 정복하는 계획을 세웠다. 김일성은 인민군이 대구·부산·대전 등을 동시 점령하고, 서울만 점령하면 된다고 판단했다"는 사실도 소개했답니다.
김 목사는 김일성이 1967년 8월 민족보위성(현 인민무력부) 정찰국 직속 특수부대인 124군을 창설한 배경과 관련해 "당시 저는 ‘김일성이 6·25전쟁 실패를 교훈 삼아 장기전 대신 단기(속도)전을 수행하기 위해 1만 명 규모의 특수부대를 창설해 남한 전국 8도를 육·해·공으로 침투해 단기간에 장악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며 "제주도를 제외한 육지 8개 도에 특수요원 1000명씩을 침투시키는 계획이었던 것이다. 서울·경기도는 2000명이 서해안과 육상을 통해 바로 들어오게 돼 있었다. 당시 대한민국에는 제대로 된 무기 등이 없을 때다. 나는 124군 1기생"이라고 밝혔다.
김 목사는 "1968년은 1·21사태와 푸에블로호 사건 등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죽 이어졌다. 제2의 6·25전쟁이 발발할 뻔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1968년 11월 124군 부대에서 훈련받은 특수부대 요원 120명이 남파됐는데,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이다. 푸에블로호가 확인하려던 내 말의 진의가 입증된 것"이라며 "124군 부대가 창설됐다던 내 말을 믿지 않던 미국 정부가 정말로 이 사건이 터지자 한국에 대한 태도를 확 바꾸게 된다. 한반도 방위를 적극 지원하는 의미에서 1억 달러의 원조금을 보내, 한국군의 전방 목책을 모두 철거하고 155마일을 철책선으로 깔고 탱크 저지선을 만들고 향토예비군제도·유격훈련도 그때부터 시행됐다. 군 복무도 6개월 연장됐다"는 사실을 소개했다니다.
김 목사는 인터뷰 당시 청와대 앞에서 쫓길 당시 총 한 발 쏘지 않고 남쪽으로 도망간 뒤 투항한 사실을 처음 공개했다. 김 목사는 북한에서 ‘김신조 루트’를 거쳐 남한에 정착한 뒤, 신앙인으로서 제3의 삶을 통해 ‘천국 루트’를 안내하는 소임을 맡게 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남한에 귀순한 뒤, 북한에 남겨두고 온 부모님이 고향인 함경북도 청진에서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총살당한 소식을 듣고 죽음보다 더한 고통과 좌절을 겪은 사실을 들려줬다. 김 목사는 당시 "북한에서는 육신이 고된 훈련으로 부자유했으나, 남한에서는 부적응으로 인해 정신이 부자유했다"고 했다.
그는 부인의 권유로 기독교 신앙에 귀의하면서 또다시 새 삶을 얻게 된 사연도 소개했습니다.
김 목사는 "북한에 김신조는 북한 체제를 부정하고 혁명노선을 안 지킨 비겁자로 낙인찍혔다"며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총살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각오는 했지만 막상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내 마음이 어떠했겠나"고 회고했다. 그는 "31명이 남으로 내려왔으나 모두 처참하게 죽고 나 혼자만 죽지 못하고 남았다는 심적 고통과 자책에 시달렸다"며 "초등학교 교과서에 무장공비 김신조 사진까지 실려 자녀들이 공비 자식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아 남한 생활도 정신적 고통이 컸다"고 했다.
그는 아내의 끈질긴 설득 덕도 있지만 교회에 가기로 결심한 것은 자녀들 때문이었다. 그는 "아이들이 교회에 나가고부터 나를 멀리하지 않고 오히려 가까이 대했고 얼굴빛도 밝아지고 성격도 활달해졌다"며 "그때부터 북한·남한의 삶에 이어 3번째 신앙의 삶이 펼쳐졌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관광코스가 된 ‘김신조 루트’를 찾는 국민에게 지금은 제 삶을 통해 ‘천국 루트’를 발견하도록 안내하는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고 말했답니다
그의 자전적 에세이 ‘나의 슬픈 역사를 말한다’, 신앙 간증집 ‘날지 않는 기러기’ 등을 토대로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담은 영화가 제작 중이다. △함북 청진 생(1942년) △투항, 귀순(1968년 1월 21일) △서울 침례신학대 대학원 졸업(1991년) 졸업 △목사 안수(1997년) △기독인 월남귀순용사 선교회 이사장 △서울성락교회 원로목사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