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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수 정수라 나이 실제 남편 결혼 이혼 고향 프로필
    카테고리 없음 2022. 8. 8. 19:33

    

    1) 정수라의 간략 프로필

    본명은 정은숙 (丁銀淑)이며, 나이 출생은 1963년 음력 10월 28일입니다. 신체 키는 165cm라고 하며, 혈액형은 AB형이네요! 종교는 불교이며, 가족관계로는 
    어머니 임정희와, 언니 정진숙, 정효숙이 있답니다.

    지금의 소속사는 제이뮤직컴퍼니라고 하며, 데뷔는 1974년 〈종소리〉랍니다. 

    2) 한 방송에서 자신의 전남편과 이혼에 대해서 언급!

    정수라가 이혼을 한 과거부터, 각종 루머에 시달렸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전했답니다.

    2021년 6월 25일 방송된 SBS 플러스 예능 '밥은 먹고다니냐'에서 정수라가 출연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날 라이브 여왕 정수라가 게스트로 출연했다. 김수미는 정수라를 보며 반갑게 맞이했고 정수라는 "만난다고 생각하니 너무 떨렸다"면서 긴장된 모습을 보였다. 최양락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정수라와 코미디 프로그램도 함께 했다며 회상했답니다. 


    김수미는 "왜 요새 TV에 많이 안 나오냐"며 질문, 정수라는 지방행사와 방송 등 꾸준히 활동 중이라고 말했다. 정수라는 "생각해보니 예능을 안 하니 활동을 안 한다고 생각하더라"고 하자, 김수미는 "예능감은 있어?"라고 물었다. 정수라는 "불청에 나가서 편안한 자리에 갔는데 머리쓰는 건 못 한다"면서 예능감이 없다며 고민했다.  

    

    또한 정수라는 김수미와 오해가 엮여있다면서 "오해아닌 오해를 풀고 싶다"고 했다. 김수미는 "친분이 없는데"라며 놀라워하자, 정수라는 "아마 기억 못할 것"이라며 처음 2011년에 김수미와 만났다고 했다. 8년 전, 故김영세 패션 디자이너 패션쇼장에서 처음 만났답니다.

    정수라는 "패션 쇼 위에서 노래를 하는데 마이크가 안 나와 리얼 생 라이브로 노래했다, 공연 망쳤단 생각에 뒤집어놨던 기억이 있다"면서  "이후 화가 나 대기실을 지나가는데 김수미 선생님을 봤다, 혹시 그 일을 기억하실까 걱정했다, 사실 무서웠다"고 말했답니다. 이에 김수미는 "나 8시간 전도 기억 못 해, 전혀 몰라, 패션쇼 장소와 무대만 기억난다"고 했고, 최양락은 "수미 선생님한테 욕은 욕도 아니다"고 말해 웃음을 안겼답니다. 


    또한 10살 때부터 20세 미만의 신분으로 무대에 섰다고 과거를 회상했답니다. 정수라는 "단속이 가끔씩 떠, 경찰 출동하기도 했다"면서 어렵게 노래를 시작해 팝과 트로트 모두 섭렵했던 찬란했던 과거를 전했다.이에 김수미는 "노력이 아니라 이미 타고난 거구나"며 감탄했답니다.

    10살부터 무대를 씹어먹은 정수라는 올해 36년차 가수가 됐다고 해 놀라움을 안겼다. 80년대 가요계를 회상하던 정수라는 히트곡 '아! 대한민국'에 대해 "가사가 너무 싫었다, 어딘지 선동적인 가사 느낌, 가사도 길었고 시대와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면서 "의무로 만든 노래가 성공했다"며 비화를 전했답니다.

    정수라는 "세월이 흘러 어느순간 지치게 되고 마음의 휴식처가 필요해 결혼을 선택했다, 그게 2006년도"라면서 "아이를 갖고 싶어서 2년 동안 활동을 안하기도 했다"며 과거를 떠올렸답니다.

    하지만 7년만에 파경을 맞이한 이혼 아픔을 전했다. 정수라는 "나는 사랑이었지만 그는 아니었더라, 내 모든 걸 잃었던 일생일대의 사건"이라며  "잘 되길 바라며 남편의 사업 자금을 지원하다 보니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결과적으론 그렇게 됐다"며 약 6년 전 사업 자금만 20억원 정도 지원했다고 말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답니다. 

    믿었던 사랑에 속아 한 동안 마음 고생했던 과거를 다시 떠올린 정수라는 "나는 분명히 사랑이었고 결국 그는 사랑이 아니었다, 괴로움과 자괴감에 2011년 부터 별거생활했지만 외부에 알릴 수 없었다"면서 "그 동안 마음의 준비를 해왔다, 엄마 집이 걸려있는 문제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지만 경매로 넘어가 해결 방법이 없었다"며 울컥했다. 이에 보증 위기를 맞았던 정수도 공감하며 눈을 질끈 감았답니다.

    

    정수라는 삶과 죽음 기로에 있던 시절을 떠올리며 "한 달 반동안 소주와 라면만 먹어, 도저히 충격에 헤어나오지 못 했다"면서 "매일 술마시면서 정리했고 죽어야겠다 생각해, 몸이 망가졌다, 하지만 엄마랑 언니 때문에 결국 못 했다"며 또 살아야만 했던 이유는 바로 가족 때문이라 했다. 특히 母를 떠올린 정수라는 "매달 생활비를 용돈으로 보내드렸는데 그 돈으로 엄마가 적금을 부었더라, 그걸 다시 5천만원 적금을 내 손에 쥐어주더라"며 울컥해 모두를 가슴 아프게 했답니다.


    다행히 작년부로 드디어 청*했다는 정수라에게 김수미가 "다시 사랑하고 싶어?"라고 묻자, 정수라는 선뜻 대답하지 못 하더니 "아직은 남자가 무섭다"며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정수라는 "아직은 더 열심히 달려야 한다고 생각, 내일을 꿈꾸기보다 오늘 하루에 집중하는 중이다"면서 "무엇을 하든 행복한 하루를 보내는 것, 오늘이 마지말 날처럼 살려고 결심했다"고 전했답니다.

    정수라는 "내 옆을 지켜준 엄마, 이제 함께 같이 산다"면서 "음식을 참 잘 하셨는데"라며 어머니 생각에 또 눈물, 정수라는 "울지 않는다고 했는데"라며 눈물을 닦았다. 정수라는 "나를 살게해준 엄마, 어느날 갑자기 늙으신 것 같더라, 정신이 강하신 분이었는데"라며 母를 떠올렸고, 모두를 먹먹하게 했답니다. 

    정수라는 이혼 그리고 자신을 둘러썬 루머에 대해 입을 열었다. 정수라는 "미국에 산 적도 없다"면서 "90년도 미국에서 음반작업한 건 사실, 그때 미국 원정 출산에 대해 루머가 생겼다"면서 루머를 해명했다. 그러면서 땅부자라는 설에 이어 다양한 루머에 대해 입을 꺼냈답니다.


    정수라는 "듣기 민망한 루머, 가족들에게 미안할 정도"라면서 "대처를 안 하지도 않았다, 매체마다 해당 인터뷰를 해도 그때 뿐"이라며 속상함을 토로했다.정수라는 "재벌 회장의 애인루머는 대꾸할 가치도 없어, 허무맹랑한 소문"이라며 이제서야 웃음을 지었다. 지금은 미소짓는 옛날 이야기가 되었지만 파란만장한 그녀의 인생사가 지켜보는 이들까지 먹먹하게 했답니다.  

    3) 그녀의 생애
    1963년 12월 13일(음력 10월 28일) 서울특별시 출생이며, 초등학교 5학년 때인 1974년, 한국일보가 주최하는 제1회 한국가요제에서 함중아 작곡의 '종소리'를 불러 인기상을 수상하면서 가수로 데뷔했답니다. 주로 CM송이나 만화영화 주제가 등에서 얼굴없는 가수로 활동하다가 성인이 된 후인 1982년에, '그런 사람이 나는 좋아'로 본격적으로 가수활동을 시작했답니다.

    그 후 1983년에, 앨범에 수록된 건전가요 '아! 대한민국'이 크게 인기를 끌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라 전성기를 이루게 되었다. 이후에도 '도시의 거리'(1985), '난 너에게'(1986)], '환희'(1988)[6] 등을 히트시켜 80년대를 상징하는 여자 가수 중 한 명으로 자리잡았답니다.

    '아! 대한민국'은 그녀에게 가요톱텐에서 골든컵을 수여해 준 대표곡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의 흑역사다. 1983년에 '아! 대한민국'으로 KBS, MBC에서 여자 신인 가수상을 받고 스타덤에 올랐던 것이지만,

    

    '아! 대한민국'이 그 당시에 제2의 애국가라고 불릴 정도로 전두환 정권의 체제 홍보용으로 널리 쓰이면서 "어용 가수", "관제 가수" 소리를 할 정도로 정수라를 곱게 보지 않았던 시선도 존재했던 것이다. 1986년 아시안게임 때는 경기가 끝나면 정수라가 부른 '아! 대한민국'이 지겹도록 나왔고, 정수라 자신이 잠실종합운동장에서 노래를 부른 적이 있었답니다.

    지난 1988년에 '환희'를 히트시킨 이후에는 TV활동을 자제했고 미국 진출을 계획해서 미국으로 떠나 마이클 잭슨의 형인 저메인 잭슨과 듀엣으로 노래를 불렀으나 앨범 발매가 무산되어 큰 성과를 얻지 못 했답니다.

    그 뒤에는 오랜 공백기로 인해서 당시 그녀의 나이와 맞물려 재벌 총수의 아들을 몰래 낳아 5백억 원을 받았다는 등의 악성 루머에 시달렸고 스타일의 변화로 인해서 히트를 못 치다가 1992년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으로 가요계가 재편성되면서 주류 가요계에서 밀려났답니다.

    나중에 언론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이를 해명했답니다. 당시는 인터넷 같은 게 없던 시절이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유언비어급 헛소문이 많이 돌았다. 심지어 멀쩡하게 잘 살고 있던 유명 배우(고두심, 노주현 등)의 사망설이 열흘에서 한 달 넘게 회자되기도 하고, 정말 가관인 것으로는 서태지 여장설에 임신설까지 있을 정도였답니다.

     

    결국에, 대부분 출처없는 소문으로 일부는 연예 기자 등에 의해 악의적으로 부풀려졌다. 이런 루머들 때문에 이지연이나 이상은은 연예계에 환멸을 느끼면서 아예 가요계를 떠나서 은퇴를 하거나 대중적 인기를 배제한 뮤지션의 길을 가게 되었답니다.


    참고로, 1992년에 '오늘 같은 밤이면'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던 박정운과 듀엣으로 잭슨파이브의 'I`ll Be There'를 불러 가창력을 뽐낸 적이 있답니다

    2009년 자신의 밴드인 '정수라밴드'를 조직한 다음 17집 앨범을 출시했답니다. 이후 방송활동을 병행하며 자신의 기존 히트곡들도 보다 록 스타일이 가미된 편곡을 하여 선보이고 있다. 가장 최근의 신보는 앨범은 2012년 발매한 '사랑을 다시 한 번'이지만, 디지털 싱글은 2017년에 싱글 '어느날 문득'이다. 그리고 틈틈이 설운도와의 싱글 콜라보를 발매하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방면의 활동을 하고 있답니다.

    

    한편, 가끔 지방자치단체 축제 행사까지도 뛰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선희와 마찬가지로 자기 관리가 매우 철저하여 50대 중반임에도 불구하고 전성기 때와 거의 달라지지 않은 가창력과 화끈한 무대매너를 매번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일세를 풍미했던 가수답게 30대 이상 연령층에게 인지도가 매우 높아서 일단 무대를 뛰었다 하면 공연 분위기는 무조건 달리게 된답니다.

    방송은 주로 KBS 콘서트 7080이나 지방 MBC의 가요 콘서트 등의 단골 손님인데, 별스럽게도 KBS 가요무대에도 등장한 적이 있어서 올드팬들에게 "아니 정수라가 벌써 가요무대 라인업에 설 나이란 말이야?"라며 충공깽을 선사한 적이 있다. 그리고 여기서도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과 함께 달렸답니다.


    1990년대 이후는 방송출연을 잘 하지 않았기 때문에 90년대 이후 태어난 젊은층에게는 생소한 가수로 인식되는데, 복면가왕에 출연한 것과 응답하라 1988의 유동룡이 춤추는 부분 때문에 존재를 알게 된 뉴비들도 있는 듯 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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