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아산병원 주석중 교수 가족 부인 아내 유족 유퀴즈 빈소
참아남
2023. 6. 21. 00:44
주석중 교수 사고 전 아내에게 “환자 상태 좋아졌대~”
- 2023. 6. 18
주석중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가 지난 16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진 사실이 알려진 뒤 그에 대한 애도가 이어지고 있답니다.
18일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주 교수 빈소에는 의료계 동료, 제자뿐 아니라 주 교수에게 치료를 받은 환자들의 추모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아산병원 관계자는 “유족 허락 하에 주 교수와 인연이 있는 여러 환자들이 조문을 다녀갔다”고 전했다. 주 교수와 안면이 없던 일반 시민들도 ‘대동맥 명의’의 부음에 조의금을 전달했다.
주 교수는 16일 오후 1시20분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던 중 병원을 500m 앞두고 우회전하던 덤프트럭에 치여 사망했다. 당일 새벽까지 응급수술을 한 주 교수는 잠시 귀가해 쪽잠을 자고 나오던 길이었다고 한다. 과로를 걱정하는 아내에게 주 교수는 “환자 상태가 좋아져 기분이 좋다”고 했다고 한다. 그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주 교수의 별세 소식에 대한의사협회장을 지낸 노환규 대한정맥통증학회장은 “이런 인재는 대체 불가능하다”며 “‘탁월하고 훌륭한’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인재의 부재로 누군가는 살아날 수 있는 소생의 기회를 잃게 될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답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주 교수 환자나 그 가족들이 쓴 것으로 보이는 감사와 추모의 글이 잇따랐다. 2005년 아버지가 주 교수에게 수술을 받았다는 한 남성은 주 교수을 ‘크리스마스 날, 연말연시, 명절 새벽에도 병원에서 숙식할 정도로 환자에 열정적이었던 의사’고 기억했다. 그는 “주 교수 덕분에 대동맥류 심장질환으로 쓰러졌던 아버지가 15년 더 살 수 있었던 것이다”는 글을 올렸답니다.
또 다른 이는 “지난 8일에 뵌 것이 마지막일 줄 몰랐다”며 “불안해하는 내게 수술 잘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시켜 주고 응원해 주던 분이었다. 덕분에 저는 아직 살아있다. 명복을 빈다”고 적었다.
주 교수는 의료계에서 대체 불가능한 인재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울산의대 흉부외과 교수이자 서울아산병원 심장병원 대동맥질환센터 소장이었던 그는 응급수술에 대비해 병원에서 10분 거리에 살면서 환자들을 치료해왔다. 고난도 수술이 필요한 대동맥 박리 수술 성공률을 98%까지 끌어올려 관련 연구 성과를 세계 3대 흉부외과 학회 중 한 곳인 ‘유럽심장흉부외과학회’에 발표하기도 했답니다.
주 교수의 병원 홈페이지 자기 소개란엔 “대동맥을 전공하면 누군가에겐 평생 한 번쯤 있을 일을 자주 경험한다. 비록 개인사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지금 삶이 늘 고맙다”고 적혀있다. 발인은 20일 엄수된답니다.
"응급콜 없는 하늘서 편안히"…주석중 교수 눈물의 영결식
- 2023. 6. 20
병원 앞 교차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등진 주석중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 흉부외과 교수의 영결식이 20일 거행됐다.
이날 오전 8시 서울아산병원 영결식장. 주 교수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모였다. 근무 중 흰색 가운을 입은 채 영결식장을 찾은 의사들도 있었습니다.
영결식장에 들어서자 수북이 쌓인 국화 위 굳게 다문 입술의 고인의 모습이 보였다. 주 교수의 배우자와 자녀 등 유가족들은 영정사진을 바라보며 조용히 흐느꼈다. 영결식장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답니다.
조사를 읽은 김승후 울산대 의과대학 학장은 "비통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며 "항상 남을 먼저 배려하던 주 교수의 자상함에 주위는 평온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시고 평안한 곳에서 편히 쉬시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추도사를 맡은 김홍래 심장혈관 흉부외과 교수도 "지금도 본관 13층에 올라가면 복도에서 자전거 바퀴소리와 함께 선생님께서 손을 흔드시며 '안녕'이라고 인사하는 목소리가 들릴 것 같다"며 "(주 교수를) 생각하면 자비로움과 순수함이 떠오른다. 어떤 상황에서도 환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셨고 새로운 생명과 위안을 전달했던 것이다"고 말했답니다.
그러면서 "하늘에서는 응급콜에 밤에 깨는 일 없이 편안하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영결식이 끝나고 운구 행렬이 식장을 천천히 빠져나가자 유가족과 동료, 지인들의 흐느끼는 소리는 더욱 커졌답니다.
주 교수의 배우자는 힘겹게 발걸음을 옮겨 운구차에 올랐다. 자녀들도 작은 소리로 흐느끼며 뒤를 따랐다. 동료들과 지인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운구차를 향해 마지막 작별인사를 건넸다.
주변 사람들은 주 교수를 '환자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고 입을 모았답니다.
주 교수와 같은 병원에 근무했다는 김모 씨는 "가족만큼이나 환자를 아끼는 사람이었고 병원 일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셨던 분"이라며 "수술이 있는 날에는 언제든지 달려오셨던 분이다. 남을 위해 살다가 가신 것 같아 정말로 더 안타깝다"고 기억했답니다.
주 교수와 같은 교회를 다녔다는 이모 씨도 "많은 일을 하셔야 될 분이 이렇게 먼저 가니 너무 마음이 아프다"며 "(주 교수를) 대체할 수 있는 분이 얼마나 되실까 싶다. 병원에서는 살아계신 예수님이라고 불리셨다. 인품도 훌륭하셨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교회 지인 A씨 역시 "살아계셨을 때 따뜻하고 사랑을 많이 주셨던 분이다. 다들 좋아하셨다"고 울먹였답니다.
주 교수는 지난 16일 오후 병원 인근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다 덤프트럭에 치이는 사고로 별세했다. 주 교수는 평소 응급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병원 10분 거리에 거주하며 진료가 없는 날에도 온콜(on-call, 긴급대기) 상태로 환자들을 돌봤다. 주 교수가 가족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환자 상태가 좋아져 기분이 정말로 좋다"였다고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