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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풍산부인과 오지명 근황 허경영 나이 탤런트 프로필 딸 고향

참아남 2022. 8. 9. 19:54



1) 배우 탤런트 오지명의 근황

'순풍산부인과'에 출연해 인기를 끌었던 배우 오지명이 대선에 출마했던 허경영 국가혁명당 명예대표를 지지한 사실이 재조명받고 있답니다.


지난 2022년 2월 경에 허 대표의 공식 유튜브 채널인 '허경영TV'에는 오지명과 허 대표가 만난 영상이 게재됐습니다.

영상에서 오지명은 허 대표에게 "이번에 꼭 대통령이 되셔야 한다. 그래야 이 나라가 산다"며 대선 지지를 선언했다. 허 대표는 지난 9일 열린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0.83%의 득표율을 기록, 전체 4위에 올랐답니다.

당시 허 대표는 코로나 긴급생계지원금으로 만 18세 이상에 1억 원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걸었던 바 있다. 오지명은 "(공약이) 말이 되느냐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계산을 해 보니까 맞았다"고 말했답니다.

오지명은 허 대표를 지지하게 된 이유에 대해 "오래전부터 알았다. 그런데 뜨질 않고 기득권 세력들이 이상한 쪽으로 몰아간다"면서 "자신을 이용해도 좋으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말하기도. 또한 커피잔을 비롯해 자신이 사용하는 물건에 허 대표의 얼굴이 부착돼 있다며 허 대표를 향한 지지가 진심임을 강조했습니다.


이어 근황을 묻는 질문에 오지명은 "'순풍 산부인과'와 비슷한 시트콤을 준비하고 있다. 하반기에 나올 것"이라고 귀띔했답니다.



오지명이 출연한 SBS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의 인기는 종영된 지 20년이 넘었음에도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여전히 식지 않고 있다. 이 가운데 오지명의 행보가 전해지자 누리꾼들은 대체로 '충격적'이라는 반응이다. 현재 그의 나이는 82세다. "산부인과 원장님이 어쩌다가", "세뇌당한 건 아닌가 걱정된다", "괜히 마음이 아프다", "유명인 근황 중 제일 충격"이라며 오지명의 행보에 안타까움을 표했답니다.

한편 오지명은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의 신구, '거침없이 하이킥'의 이순재를 비롯해 '시트콤 속 할아버지 캐릭터'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장인어른, 왜 그러세요~'라는 유행어를 낳은 사위 박영규의 넉살에 휘둘리고 손녀 미달이(김성은)에게 사랑을 듬뿍 주는 익살스러운 인물이었답니다.

2) 오지명의 프로필과 생애

본명 - 오진홍(吳鎭洪)
출생, 나이 - 1939년 3월 5일
고향 출생지 - 충청북도 청주군[1]

학력
대구상업고등학교 (졸업)
성균관대학교 법정대학 (경제학 / 학사)

종교 - 개신교
데뷔 -
1960년 국립극단 단원
1966년 KBS 특채 탤런트

1967년에 영화 "무남독녀"로 데뷔했다. 지금은 코미디 영화에 주로 나오지만, 초기에는 하드보일드 영화에서 악역으로 자주 나왔었다. 1939년 일제강점기 당시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상경하여 서울에서 살던 중 중학교 3학년때 6.25 전쟁을 피해 대구로 피난와서 텃세로 고생했습니다.


오지명은 서울에서 왔다고 많이 맞았으며 동남 방언을 익혔다고 한다. 대구상고 시절 학교 짱까지 됐을 정도로 2학년까지는 공부에 거리를 뒀으나 3학년 승급 후 공부에 몰두했다고 한다. 원래는 서울대학교 상과대학를 두 번이나 지망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에 진학했지만 현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던 중 연극에 빠졌답니다.



대학교 2학년 시절 우연히 명동에 붙은 국립극단 단원 모집 광고를 보고 응모하여 국립극단 연구생으로 입문했던 지성파 배우였다.젊은 시절에는 액션영화와 반공 영화에 많이 출연했다. 그 시절의 메이저급 영화는 팔도사나이와 암살자(둘 다 1969년 작)로 그는 여기서 조연으로 나왔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TV 드라마에 주력했다. MBC 113 수사본부의 중앙정보부 요원 역할이 이 시절의 대표 배역. 또한 이 시기에 조선왕조 오백년 남한산성에서 강홍립 역을 맡기도 했으며 제3공화국에서는 이후락 역을 맡았답니다.


그 뒤 50대로 접어들면서 대한민국 최초의 시트콤인 오박사네 사람들에서 엽기적이고 웃긴 할아버지 캐릭터로 주연을 맡으며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고, 이후 60세가 다 된 나이에 순풍산부인과의 오지명으로 대박을 터뜨린 뒤에는 시트콤 위주로 활동하면서 코미디 역량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둘 다 코스비 가족 만세를 많은 부분에서 벤치마킹했다. 2004년에는 최불암, 노주현 등과 같이 영화 까불지마를 촬영하여 감독과 주연을 맡았다. 하지만 흥행과 평단 모두 안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래도 노장 배우들의 열연과 재미 등으로 숨은 팬들은 꽤 있었다. 2008년에는 OBS 경인TV의 시트콤 오포졸에서도 주연을 맡았다. 이 작품을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임했다는 기사가 있었는데, 이 이후로 2022년 현재 작품 활동이 전혀 없다. 항간에는 감독으로서 차기작을 준비 중이라는 소문이 있답니다.

정웅인의 인터뷰에 의하면 오지명이 너무 코믹 연기만 하지말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자기 자신도 코믹 이미지가 각인되는 것에 꽤나 부담이였던 듯. 그리고 이런 오지명의 조언이 훗날 정웅인을 훌륭한 악역 배우로 만들어준 계기가 되었을 것이랍니다.


시트콤의 영향으로 코믹한 이미지로 굳어져서 대외적으로는 재미있는 할아버지 정도로만 알고 있지만, 사실 과거의 액션 배우 이미지처럼 실제로도 대단한 카리스마의 소유자. 최불암조차도 오지명 앞에서는 꼼짝을 못했을 정도라고 한다. 최불암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는 유일한 연예인이다. 참고로 최불암이 오지명보다 1살 아래며 주먹 실력도 대단했다고 한답니다.

2019년 케이블 방송에서 한창 재방송 중인 1990년대 대히트 KBS 드라마 서울뚝배기만 보더라도 식당 사장 역으로 나오는 오지명의 무척 진지하고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볼 수 있답니다

시트콤에서 보던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나사 빠진듯 한 모습만 기억하던 사람들에겐 꽤 색다른 모습일 것이지만, 원래 매우 진지한 정극 전문 액션 배우였다.

왕년에는 방송가에서 오지명의 "얘 무조건 출연시켜!"라는 한 마디면 감히 거역을 못하고 그 사람을 캐스팅해야만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건방져 보이는 PD를 폭행했다는 얘기를 토크쇼에서 직접 말하기도 해서 물의를 빚었고, 그 외에도 꽤 많은 구설수와 좋지 않은 소문이 있답니다.



이종환처럼 어두운 측면이 좀 보인 것이다. 다만 당시에 피디의 권한이 절대적이었던 시대 분위기를 생각하면 오지명의 이러한 거침없는 행동은 당시의 방숭국 문화를 생각하면 오히려 이질적이었을지도 모른답니다.

실제로 오지명이 까불지마를 찍을 당시 취재했던 기자에 의하면 오지명은 꼰대스러운 권위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고 한다. 하여간 오지명 본인의 이야기로는 고등학생 시절에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경찰들과 싸운 적도 있다고 한다. 친구들은 다 퇴학 당하고 본인만 무기정학을 당했다고 한답니다.


마초같은 성격과 더불어 말을 굉장히 험하게 하는 편이다. 실제로 흑인에게 깜둥이, 이발사를 깍새, 구두닦이를 딱새라고 하는 등, 직업이나 인종에 대해서 필터링없이 막 말하는 편이다.

순풍산부인과 출연진 전원이 카렌스 CF를 찍었을 당시 박영규가 미달이의 출연료를 갈취하자 오지명이 박영규를 구타했다는 루머도 있는데, 해당 루머는 김구라 황봉알의 시사대담에도 언급될 정도로 연예가에서 매우 유명했던 루머지만, 현실적으로 김성은의 부모도 있는데, 박영규가 김성은의 출연료를 갈취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랍니다.

아들인 오승익은 '머저리오'라는 예명으로 래퍼와 배우 활동을 하고 있으며, 친동생인 오진우는 영화 음악감독이랍니다.

2004년 11월 11일에 해피투게더에 출연했을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시절에 여탕을 훔쳐본 적이 있었다고 했다. 모 영화 촬영 중에 후배 탤런트가 여탕 훔쳐보기 좋은 장소가 있다고 그를 꼬셔서 같이 여탕을 훔쳐봤는데 그렇게 한참 여자들의 알몸을 감상하던 중 더 자세히 볼려고 앞으로 가다가 문을 여는 실수를 하는 바람에 성난 여자들이 벌떼 같이 달려와서 싸대기 몇 대 맞고 달아났다는 일화가 있답니다

해피투게더 출연 당시 시험에서 컨닝을 한 이야기도 했었는데, 방영 며칠 전에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대규모의 부정행위 사태가 있었던지라 이에 대해 비판이 있었다. 물론 프로그램의 녹화는 수능 전에 있었던지라 녹화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왔어도 PD가 알아서 편집을 했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던 것이다. 후에 그도 필름2.0과 한 인터뷰에서 PD가 생각이 없었다면서 PD를 디스했답니다.

지난 1998년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영화 판권을 담보로 제작비를 지원하는 융자사업 대상작 10편을 선정하였을때 이중 "애국시민 노기찬"이라는 작품으로 입상하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