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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전사자 행방불명 이광수 잠수함 있는곳 표일병
참아남
2022. 8. 1. 02:30
49일간의 전쟁이 있었으며, 약 18명의 희생자들이 있었답니다. 생존 군인들에게도 트라우마를 안긴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의 전말이 밝혀졌습니다. 2022년 7월 28일 저녁에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선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의 전모가 그려졌답니다.
지난 1996년 경에 강릉 바다에 나타난 잠수함이 있었답니다. 해당 잠수함은 북한 소유의 것으로 진돗개 하나가 발령되면서 UDT 대원들이 투입됐습니다. 아울러 함내에서 찾아낸 것은 각종 기관총에 대전차 로켓포 등 무기들로 긴장되는 상황에도 바로 대원들은 수색을 이어갔으나 그 안에 무장공비들은 없었답니다.
북측의 침투 목적을 알아내고자 대원들은 다시금 수색에 나섰고, 그 결과 11구의 시신을 찾아냈습니다. 결국에는 이어진 수사 끝에 군은 생존한 공비를 체포했답니다. 그는 잠수함의 조타수 이광수였는데, 그에 따르면 북에서 총 26명의 공비가 내려왔으며 14명의 공비가 생존 중이었답니다. 이에 따라서 강릉 전 지역에 통행 금지령이 내려졌으며, 총격전을 통해 공비들을 하나 둘 검거했으나 이 과정에서 강 상병이 숨을 거뒀습니다.
이어진 결전에서, 꼬박 4시간 동안 이어진 총격전 끝에 공비 둘이 사*됐지만 우리 군 셋도 전사했ㅅ브니다. 사*된 공비들은 북의 정예들로 그들의 소지품 중엔 실종된 군인 표 일병의 시계가 있었습니다. 결국 표 일병은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표 일병을 탈영으로 몰았던 국군은 그제야 사과를 했고, 이에 ‘꼬꼬무’ 출연자들은 “정말로 한 가정의 아들을, 고귀한 생명을 이렇게 잃어야 하다니. 하늘이 무심하다. 너무나도 아깝다”며 안타까워했습ㄴ다.
더욱 큰 문제는 이때까지도 한 명의 공비가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까지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도주 중 사망했거나 북으로 넘어갔을 것이란 추측이 유력하답니다. 그렇다면 공비들의 임무는 뭐였을까요?? 가장 유력한 분석은 정보 수집을 왔다가 잠수함이 좌초됐을 가능성으로 정말로 이를 뒷받침하듯 공비들이 소지했던 카메라에선 군부대나 주요시설을 찍은 사진들이 나왔습니다.
참고로, 이 같은 무장공비 사건에 북측은 훈련 중이던 잠수함이 기관고장으로 표류하다가 일어난 우발적인 사건이라고 변명하다가도 미국의 개입에 뒤늦은 사과를 전했습니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2010년, 북측은 해당 공비들은 ‘자폭영웅’이라 칭하며 선전 영화를 제작했으며, ‘꼬꼬무’ 출연자들을 아연케 했다. 이에 출연자들은 “누굴 위한 진정한 희생인가”라며 입을 모았습니다.
** 해당 사건 간략 요약
해당 사건은 북한 인민무력성 정찰국 소속의 상어급 잠수함이 강원도 강릉시 동해안 일대에 침투하한 뒤에, 정찰 공작 활동을 벌이고 복귀를 시도하던 중 해상 복귀가 불가능해지자 육로를 통해서 복귀를 위해 상륙하면서 일어난 사건이랍니다.
문제의 잠수함은 지난 1996년 9월 14일의 오전5시 부대가 있는 함경남도 락원군에서 정찰국장의 환송을 받으며 출발했답니다. 휴전선 경계 5마일 정도까지는 별 문제 없었으며, 이 지점부터 수중 공기관과 잠망경을 내린채 해저 60~70m 깊이로 침투했답니다. 아울러 강릉에서 5마일 정도 떨어진 거리에선 잠수함을 부상시켜 잠망경으로 위치를 확인하며 접근했답니다. 15일에는 해안 3~400m 거리에서 잠수함을 바닥에 가라앉혀 정찰조를 상륙시켰으며, 이후 물속에서 대기하다 17일 정찰조를 태우기 위해 들어가던 중 그만 좌초했습니다.
이광수는 "대부분 잠수정이 후진을 하다 암초에 걸린 것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앞으로 들어 왔지만, 파도가 너무 쳐서 옆으로 밀리면서 암초에 걸렸고 프로펠러가 망가지면서 좌초한 상황이다”이라고 말했답니다.
그렇지만 정찰만 하고 임무 마쳐서 모두 복귀하려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답니다. 후에 침투 목표가 대통령 암*이라는 것이 공개됐기 때문이랍니다. 저격조만 상륙한 뒤에, 승조원과 잠수함은 복귀하려다 실패하자 전원 상륙하였답니다. 안기부 조사에서 이광수는 당시에 10월 7일 김영삼 대통령이 춘천에서 개막된 전국체전 개막식에 참석할 경우 저격할 목적이었음을 진술했다고 한답니다. 정부는 무장 공비 침투 목적을 사실대로 공개할 경우에, 정말로 국내 경제가 위축되고 북한과의 대화 창구가 완전 폐쇄될 가능성이 있어 한동안 보류했다고 한답니다.
이후에 1996년 9월 18일,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해상에서 68사단 초병과 택시기사 이진규가 50미터 해상에서 좌초한 북한 잠수함을 발견하면서 무장공비소탕작전이 시작되었으며, 11월 5일 인제군 연화동에서 특전사 장선용 상사가 마지막으로 잔존한 정찰조 2명을 사*함으로써 작전을 최종 종결시킬 때까지 총 49일간 이어졌답니다. 침투 무장공비는 총 26명이라는 설과 25명이라는 설이 분분했지만, 북한에서 발표한 선전물에 전사자로 분류된 것이 확인되어 26명이 맞는 것으로 추측된답니다.
이들 중 총 13명이 국군에 의해 사*됐고, 11명이 함께 침투한 공비에 의해 처*됐으며, 1명(이광수)이 생포됐습니다. 그리고 1명은 위에 서술되어 있듯이 행방은 커녕 존재 자체도 불확실하지만 일단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답니다. 아군의 피해는 전사 11명(장교2과 아울러서, 부사관2/병7), 아군의 오인 사격으로 전사 1명(68사단의 홍동진 대위), 부상 27명에다가 민간인 4명, 경찰 1명 사망, 예비군 사망 1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