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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백호 작품활동 나이 김자옥 동생 남편 오승근 부인,김태욱 아나운서 사망
    카테고리 없음 2022. 9. 18. 19:06

    

    - 김자옥 최백호 오승근의 관계는???

    故김자옥 남편 오승근 "오늘 집사람과 헤어지려 한다"
    - 2014.11.19.

    오승근이 아내 고(故) 김자옥에게 마지막 작별의 말을 건넸답니다.

    고 김자옥의 발인예배가 11월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반포동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고 김자옥의 발인예배에는 강부자, 조형기, 강석우, 이성미, 이경실, 송은이, 김지선 등 생전 고인과 인연을 맺었던 동료들과 가족들이 참석해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발인예배 말미 고 김자옥의 남편 오승근은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며 "오늘 10시 (고인을) 화장하고 분당에서 집사람과 헤어지려 한다. 가족들이 대부분 해외에 있었는데 거의 다 왔다. 3일 동안(아내가)보고싶어 했던 거의 모든 가족들을 본 것 같다"고 소감을 밝히며 고인이 몸 담았던 성가대에도 감사인사를 전했다.

    이후 고인의 관이 화장터로 이동하는 것을 지켜보던 지인들은 끝내 오열하며 고인의 죽음을 슬퍼했다. 이들은 고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망연자실했습니다.

    이전에 고 김자옥은 폐암 투병 끝에 11월 16일 향년 63세로 별세했다. 유족으로 남편 가수 오승근와 아들 오영환 씨, 김태욱 SBS 아나운서 등이 있다.

    조문을 시작한 16일부터 18일까지 많은 동료 연예인들이 빈소를 찾았다. 나문희, 윤소정, 박원숙, 송도순, 박미선, 이성미, 윤여정, 이미연, 김희애, 이승기, 주원, 유재석, 전도연, 나영석PD, 노주현, 독고영재 등 동료들은 빈소를 찾아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고 김자옥은 발인식 후 서울 원지동 추모공원에서 화장된 뒤 분당 메모리얼 파크에 안치될 예정이다.

    한편 고 김자옥은 1951년 올해나이 63세로 1970년 MBC 2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고 김자옥은 데뷔이후 40여 년간 브라운간에서 활약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고 김자옥은 지난 1975년 김수현 작가가 집필한 드라마 '수선화'로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또 고 김자옥은 1976년 변장호 감독의 '보통여자' 주연을 맡아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최우수연기상까지 받으며 김영애, 한혜숙과 더불어 1970대 트로이카를 형성했답니다.


    고 김자옥은 1980년에 가수 최백호와 결혼한 후 연예계 은퇴를 선언했지만 1982년 KBS 드라마 '사랑의 조건'으로 복귀했다. 이후 고 김자옥은 1983년 최백호와 이혼했고, 가수 오승근과 재혼했다.

    고 김자옥은 재혼 후 뛰어난 연기력과 아름다운 외모로 다시 한 번 주목 받았고 지난 1996년 친분이 있던 태진아의 권유로 가수로 전격 데뷔해 화제가 됐다. 당시 고 김자옥은 1집 '공주는 외로워'로 60여 만장의 앨범 판매량을 기록하며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했답니다.

    특히 고 김자옥은 지난 2013년 tvN예능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에서 동료배우 윤여정, 김희애, 이미연과 함께 해외배낭 여행을 떠나 원조공주 다운 우아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 최백호 프로필 이력 경력

    출생 나이 생일
    1950년 4월 23일 (72세)
    고향 출생지
    경상남도 동래군 장안면 좌천리

    신체 키 몸무게
    170cm, 50kg
    가족관계
    아버지 최원봉, 배우자 손소인, 슬하 1녀

    데뷔
    1977년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싱어송라이터랍니다.

    본래 마라톤 유망주였으나, 선수관리 개념이 확립되지 않던 시절 위에서 몸 상태를 감안않고 출전을 밀어붙이며 무리를 한 통에 선수 생활을 접고 가수 활동을 하게 되었다. 젊은 시절에는 힘있는 목소리와 운동선수같은 탄탄한 몸으로 유명했던 가수였습니다.

    배우 김자옥과 결혼했으나 이혼했고, 훗날 재혼하여 자녀를 두었다.


    명곡들은?

    내마음 갈곳을 잃어(1977년 독집)
    : 이 노래는 떠나간 연인을 그리워하는 노래가 아니라 연극영화과에 합격하고도 누나 2명이 대학 재학 중이라 박봉때문에 교편을 놓고 장사하시던 어머님이 가정형편때문에 세 명은 대학 진학 못시키니 한 해 재수하라는 말씀에 재수하던 그 해 10월에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님을 추모한 곡이라 한다. 지역 유지였던 할아버지가 최백호의 생후 5개월이었던 한국전쟁 당시 터키군 차량과 교통사고로 아버지 최원봉이 세상을 떠나자, 애비 잡아먹은 손주라고 냉대하며 경제적 도움을 주지 않자 대학진학 포기와 어머님의 죽음, 군대에 가선 10개월 만에 결핵을 선고받아 의병제대했던 최백호의 기구한 인생을 생각한다면 그 감상이 더 깊어진답니다.

    영일만 친구 (1979년)
    : 항목 참고. 경상북도 포항시의 향토 노래로 포항시에서 만큼은 부산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부산 갈매기, 인천의 연안부두와 같은 위상을 지닌다. 해당곡은 최백호가 포항시의 각종 행사에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포항시에 기증했답니다.

    낭만에 대하여 (1994년)
    : 중장년층에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어느 정도 삶이 안정권에 들어선 그들에게 말로 설명하지 못할 감정을 안겨다주는 듯 하답니다.

    그밖에 청사포, 그쟈, 애비, 뛰어, My Way(오늘만 같아라 OST), 길 위에서(가족끼리 왜 이래 OST), 바다 끝, 부산에 가면 등이 있답니다.

    2011년 11월 8일에 발매된 박주원의 2집 앨범 '슬픔의 피에스타' 수록곡 중 '방랑자'의 피처링으로 참가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음악적 성격을 기존의 트로트 풍에서 라틴 재즈 및 보사노바 풍으로 바꾸는 시도를 하였다. 2012년 10월 29일에 발매한 복귀 앨범 다시 길 위에서를 통하여 팝 재즈, 누에보 탱고, 집시 스윙 등의 월드 뮤직요소를 적극 수용한 음악들을 선보여 대중과 평론계로부터 호평을 얻었답니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SBS 러브FM에서 밤 10시~12시대에 최백호의 낭만시대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본래 SBS 러브FM 특성상 수도권에서만 방송되는 프로그램이었지만, 방송 진행 도중인 2016년 5월 10일에 고향인 부산에 위치한 KNN 러브FM을 개국하면서 자신의 방송을 부산에서도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굉장히 흥분되면서도 기쁘다'는 인터뷰를 하였다. 특히 개국 당일에는 바로 앞 프로그램인 KNN 러브FM의 '김신식의 센텀 온에어'에 전화 인터뷰로 출현해 그 소감을 전하고, 이어진 자신의 방송에서도 첫 곡을 자신의 부산에 가면으로 선곡하며 방송에 끝날 때까지 연이어 기쁨을 표시했답니다.

    김자옥의 전 남편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낭만시대'에 이어 방송되는 '기분좋은 밤'의 DJ는 김자옥의 막내동생인, 그의 전 막내처남 김태욱 아나운서였다. 이혼 이후 재혼했고, 그 슬하에서 딸 한 명을 가졌다. 결혼하는 딸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을 노래한 '애비'라는 곡이 유명하다. 김자옥과 절친한 관계였던 강부자가 최백호에 대해 항상 좋게 얘기하는거 봐서는 나쁘지 않게 헤어진듯 하다.

    - 오승근 프로필 알아보기!!

    본관 이름은?
    해주 오씨
    출생 나이 생일
    1951년 12월 20일 (70세)

    고향 출생지
    경상북도 대구시

    학력
    경희대학교 (작곡과 / 중퇴)
    가족관계
    아내 김자옥, 처남 김태욱
    딸 오지연, 아들 오영환

    종교
    개신교 (장로회)

    

    17세(고2)였던 1968년에 홍순백과 함께 "투에이스" 를 결성하여 데뷔했다. 그러다 1971년 홍순백과 결별하고, "영에이스" 라는 그룹사운드에서 활동하다가 군 입대로 잠시 활동을 쉬게 된답니다.


    1974년 군 복무를 마치고 임용재와 함께 "금과 은" 이라는 그룹을 결성했다. 이때 "빗속을 둘이서" 라는 곡이 큰 인기를 얻게 되고, 다음 활동곡 "처녀 뱃사공" 역시 크게 흥했다. 이 노래는 본래 황정자의 곡이었으나 금과은이 리메이크한 뒤로 원곡보다 큰 인기를 얻었다. 이 노래로 연말에 MBC 10대 가수 가수상 등을 휩쓸었다. 그 뒤 "금과 은"이 1980년에 해체된 후 오승근은 솔로로 전향하게 된답니다.

    솔로로 전향한 다음에 이혼을 하게 되었는데, 이후 1984년, 역시 이혼 경험이 있었던 김자옥과 재혼하게 된다. 이 때에 건축인테리어 사업도 함께 병행하게 되었으며, 이후 여행사 사업도 함께 하게 되었다. 하지만 외환위기로 인해서 사업이 부도가 났다고 한답니다

    - 트로트 가수로의 전향은 언제?

    2001년에 있을 때 잘해를 발표하며 트로트 가수로서의 본격 활동을 시작한다. 이 곡은 오승근에게 2번째 전성기를 가져다 준 곡으로, 전 세대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여러 사람들에게 꾸준히 불려졌다. 2년 후에 선보인 '장미꽃 한 송이'도 제법 인기를 모아 오승근은 인기 트로트 가수의 반열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게 된다.

    한동안 그럭저럭 활동하다가, 있을 때 잘해 이후 10여년만에 신곡으로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는데, 바로 "내 나이가 어때서"이다. 이 노래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한국인이라면 모를 수 없는 노래 반열에 들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로도 여러 신곡들을 내면서 꾸준히 활동 중이다.

    - 김자옥 프로필 이력은???

    출생 나이
    1951년 10월 11일
    고향
    부산광역시 중구

    사망일
    2014년 11월 16일 (향년 63세)
    본관
    서흥 김씨(瑞興 金氏)

    신체 키 혈액형
    156cm, A형
    가족관계
    아버지 김상화
    남동생 김태욱
    배우자 오승근
    딸 오지연, 아들 오영환

    학력
    서울교육대학교 부설초등학교 (졸업)
    배화여자중학교 (졸업)
    배화여자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 / 중퇴)

    종교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상징 개신교(예장합동)
    데뷔
    1970년 MBC 2기 공채 탤런트

    대한민국의 배우다. 그리고, 1970년대 안방극장의 트로이카 中 한 명이다. 말년에는 중년의 여인 역을 주로 맡았지만, 사실 1970년대에 하이틴 스타로도 활약한 경험이 있다. 귀여운 외모에 호감 가는 인상은 말년에도 잘 드러났다. 현재 아줌마, 시어머니로 나오는 많은 중년 이상의 배우들 중에서 트로이카 배우들을 제외하고 김자옥만큼 인기를 누린 여배우는 없답니다.

    중년 노년 어머니 역할을 많이 하는 여배우들 중에서도, 젊었을 때 연기커리어가 엄청나게 화려한 편이다. TV의 보급으로 드라마가 영화의 위치를 대신하게 되었을 때 김자옥은 김영애, 한혜숙과 더불어 안방극장의 트로이카라 불릴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MBC에서는 양정화와 더불어 투톱 라인이었다.[10] 김영애, 이효춘도 유명했지만 김자옥과 출연하면 이들도 주조연으로 밀려날 정도로 김자옥의 위세는 다른 MBC 여배우에 비해 압도적이었다.

    이후 한국 영화계에서 박동명 사건의 여파로 기존의 영화 여배우들이 몰락하여 여배우 기근 사태로 신음하고 있을 때 김자옥이 이들 자리를 대체하였다. 그리하여 전형적인 호스티스물인 O양의 아파트, 정윤희와 함께 출연한 가을비 우산속에 등의 흥행작도 자주 내었다. 물론, 정윤희 등의 트로이카가 유행하던 시절에는 대중적인 인기에서 이들 트로이카 여배우한테 밀렸지만, 적어도 그 다음의 자리는 차지했답니다.

    이런 트로이카 여배우들이 맹위를 떨치던 시절에도 흥행작을 여러 편 냈을 정도로 기세만 놓고 보자면 트로이카를 압도하지는 못했어도 위축되지는 않았다. 주로 드라마에 많이 출연한 배우로 알려져 있지만, 1980년대에는 에로영화에서도 많이 출연했었다.

    흥행기록만 놓고 보면 당대 트로이카였던 유지인과 정윤희를 제칠 정도의 기록을 보유했다. 당시 그녀보다 흥행에서 앞섰던 여배우는 안인숙이나 염복순같은 원 히트 원더를 제외하면 이영옥과 장미희밖에 없었다. 사실 그녀가 2000년대 이후 다시 활동을 시작했을 때 그녀와 비슷한 나이대에 활동하는 중년 여배우들이랑 비교하면 그녀의 커리어를 따라잡았거나 그녀와 흥행상에서 대등했던 여배우는 없었답니다.

    또한 데뷔 때부터 외모뿐만 아니라 연기력까지 훌륭하다고 호평 받았던 흔치 않은 여배우였다. 심지어 지금은 레전드 거성이 된 고두심은 김자옥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고 불릴 정도랍니다.

    부드럽고 촉촉한 목소리로도 유명하다. 덕분에 오랫동안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도 있다. 80년대에 연예계 남자 동료들 사이에서도 김희애•성우 장유진 등을 제치고 최고의 목소리로 꼽혔답니다.

    1990년대 이후에는 예능 프로그램에도 종종 나왔는데, 1996년 MBC 코미디 프로그램 《오늘은 좋은 날》에서 조혜련, 서춘화 등과 출연해 공주병 여고생 컨셉으로 열연한 세상의 모든 딸들 이라는 개그 코너가 대히트했다. 해당 코너에서 김자옥은 중증 공주병에 걸린 여고생 역할이었는데 예를 들자면, 입원하신 선생님의 문병에 돈을 모아 꽃을 사가자고 하자, 김자옥은 이렇게 말한다. “어머, 꽃을 돈 주고 사는 거였구나! 난 남자애들이 나한테 갖다 주는 건 줄 알았어”라는 식이다. 그러한 김자옥의 공주병에 열이 받아 친구들이 덤비려 한다거나 비명을 지른다거나 물건을 부수며 화를 삭이려고 날뛰는(?) 식의 패턴. 일부에서나 쓰던 공주병이라는 말을 사실상 유명하게 만든 인물이랍니다.

    

    그 여세를 몰아 1996년 말에 태진아의 도움으로 《공주는 외로워》라는 곡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실제로 화려한 드레스와 팔목 장갑을 끼우고 머리에는 왕관을 쓴 공주 복장으로 노래하는 등 개그와 엽기 코드가 함께 하는 컨셉으로 활동했는데 제2의 전성기라 불릴 정도로 파급력이 쎘다. 앨범이 꽤나 팔리는 등 꽤나 히트를 치면서 가요차트에서 중상위 권 안에 드는 등 선전했고 이 노래를 통해 당시 우울증도 나았다고 한답니다.


    중견 배우였던 그녀는 이를 계기로 또 한 번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으며 이 때의 활동 때문에 공주병 기믹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배우가 되었다. 한 번 들어보자.

    사실 컬트 팬들 사이에서는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의 '자옥 공주'로 더 유명하답니다.

    - 가족에 대해서 알아보기!

    아버지가 시인 김상화며 어릴 적 아버지의 바람기가 심해, 가족 모두가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심지어 그녀의 어머니가 김자옥에게, "네 아버지 죽었으면 좋겠다", "밤에 화재가 났을 때 (방에서 자고 있던)네 아버지를 안 깨우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었다"고 말했다고 했을 정도. 그러나 김자옥이 해석하기로는, 어머니가 아버지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미움도 컸을 수 있다고 했으나, 본인도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미워서 편지에도 아버지를 해치겠다고 써서 아버지 방에 두었다고 했었으니, 어쨌든 힘들었던 가정환경이었던 건 사실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친언니는 우울증으로 많지 않은 나이에 자살했다고 한다. 언니는 결혼하여 자녀를 둔 상태였지만, 김자옥을 만나면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고 하며, 언니가 떠난 뒤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김자옥의 생전에 남긴 말에 따르면 자신만큼 미모가 빼어난 언니였던 듯 하답니다.

    남편은 가수 오승근. 김자옥과 오승근 각자에게 모두 재혼이었으며, 오승근 사이에서 아들 1명을 낳았다. 그리하여 오승근의 전처 소생 딸과, 재혼 후 낳은 아들까지 1남 1녀를 슬하에 두고 살았었다.

    그의 형제도 이쪽 분야에서 일하는데, 김자옥의 9세 아래 남동생은 SBS의 아나운서로 입사하여 활동 중인 김태욱 아나운서팀 부국장이랍니다.

    - 투병과 그 이후의 과정

    2008년, 대장암 진단을 받아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고 회복되어 연예활동을 재개했다. 대장암에서 회복된 후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에 출연한 것을 시작으로, 꾸준히 드라마, 영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활동을 거의 쉬지 않았답니다.

    2013년 말, tvN의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에 출연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 그동안 암 수술과 공황장애 등을 치료하며 꽤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밝혔다. 실제 방송에서도 다른 연기자들이 많이 챙기는 모습이 나온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방영된 SBS 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도 출연했다. 하지만 《꽃보다 누나》 촬영과 방송에 이어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결국 그녀의 마지막 출연 프로그램이 되었다. 마지막 영화 출연작은 같은 해 2월에 개봉한 홍상수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이랍니다.

    - 안타까운 사망

    2014년 봄,《세 번 결혼하는 여자》종영 후 한동안 휴식기를 가졌는데, 사실 전에 발병했던 대장암이 폐와 임파선 등 다른 장기로 전이된 상태였다고 한다. 결국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어, 2014년 11월 16일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무릎팍도사》에서도 "암을 친구처럼 여긴다. 마지막 순간에 대해서 항상 생각한다"는 취지의 이야기도 털어놓기도 했었으며, 《꽃보다 누나》에서도 자그레브의 성모승천대성당 방문시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었던 듯. 또한 아들 오영환 씨의 결혼식 날짜를 미리 잡고 준비를 마쳤는데, 이 또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이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서도 이민을 떠나면서 딸과 작별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때 딸에게 "산다는 건 하루하루 죽어가는 것이니 아끼지 말고 즐기며 살아야 해"라는 대사를 남긴 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홍상수의 작업 방식을 생각하면 김자옥의 투병 사실을 염두에 두고 찍은 장면으로 보인답니다.

    장례 이후 오승근은 서울을 떠나 분당신도시로 이사했다고 하며 그녀의 장지(납골당)에서 매우 가까운 곳이라고 한다. 한편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장남이 결혼식을 치르게 되어 더욱 큰 안타까움을 주었다.

    2014년 연말 방송 3사 연기대상에서 모두 공로상을 받았다. 12월 30일, MBC 연기대상과 31일 SBS 연기대상에서는 아들 오영환이, SBS와 같은 시간 진행된 KBS 연기대상에서는 남편 오승근이 고인을 대신해 수상했습니다.

    추모 공연을 따로 한 것은 없으나, KBS의 특별프로그램 《트로트대축제》에서 오승근이 《떠나는 임아》를 노래하면서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 남녀노소 구분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너무나 사랑스러운" 배우였기에 그녀의 마지막 가는 길은 많은 이들에게 슬픔을 주었답니다.

    - 여담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오뚜기의 전속 모델로 활동했다. 김자옥이 나온 제품 광고 중 오뚜기 도마도 케챂 광고에 자주 출연했는데, 이 광고 내용이 나름 충격적이다. 다름 아닌 깍두기에 케찹을 넣어 만드는 조리법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맛있다고 한답니다. 실제 방송도 탄 적 있으며, 시식 반응도 괜찮았다. 정작 그녀는 토마토를 싫어해서 오뚜기 케첩도 싫었다고. 시키면 한다! 약간 위험한 방송 시즌 3에도 실험해 보기도 했다. 결과는 먹을만 하다는 평이 대다수였다.
    상상플러스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가수 박상철의 대표곡 중 하나인 '자옥아' 때문에 어린 팬들은 박상철과 김자옥 본인이 부부인 줄 잘못 아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면서 김자옥 본인은 "내 남편은 오승근이지 박상철이 아니다."라고 다시 한 번 못을 박았다. 물론 박상철과 오승근은 같은 트로트 가수 선후배 사이이기는 하다.

    김태욱 아나운서 사망, 향년 61세..故 김자옥 막냇동생
    - 2021.03.05

    故(고) 김자옥의 막냇동생이자 SBS 아나운서 출신의 방송인 김태욱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61세.


    SBS 관계자에 따르면 김태욱 전 아나운서는 4일 자택에서 숨을 거둔 것으로 확인됐다. 정확한 사망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며, 빈소와 장지는 미정이다.

    김태욱 전 아나운서는 지난 2014년 암 투병 중 세상을 떠난 배우 김자옥의 동생으로 알려져 있다. 고인은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출신으로 1987년 CBS에서 아나운서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KBS를 거쳐 1991년 SBS 1기 아나운서로 입사했답니다.

    '나이트라인' '뉴스 퍼레이드' '뉴스와 생활경제' '생방송 투데이' 등을 진행했으며 2009년부터는 SBS라디오 '김태욱의 기분 좋은 밤'(이하 '기분 좋은 밤') DJ로 활동하기도 했다. 고인은 2020년 8월에 SBS에서 정년퇴직했지만, 라디오 방송만은 프리랜서 신분으로 계속 진행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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